법어집 성림당 월산 대종사



모두가 眞佛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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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2 작성일18-06-04 10:50 조회4,4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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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眞佛이로다

 

노사께서 법상에 올라 대중들에게 물으셨다.

 

過去佛已過 未來佛未來 現在佛何處?

과거의 부처님은 이미 지나갔고, 미래의 부처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면 현재의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대중이 부답하자 게송으로 자대하셨다.

 

若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것이 없고

어여삐 보니 꽃 아닌 것이 없구나.

 

눈을 바로 뜨고 보면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여기 앉아 있는 대중들도 부처요, 밖에 서있는 신도들도 부처다. 시장에서 물건 파는 장사꾼도 부처요, 나무하는 부목도 부처다. 애꾸눈을 한 사람은 애꾸부처요, 다리없는 사람은 앉은뱅이 부처다. 술집에서 몸파는 작부도 부처요, 서울에서 정치하는 정치꾼도 부처다. 아기는 아기부처, 어른은 어른부처, 총각부처, 처녀부처, 과부부처, 홀애비부처, 거지부처, 부자부처, 여자부처, 남자부처 …

 

人人具足天眞佛

處處開現放光明

사람마다 구족한 참다운 부처는

곳곳에 모습을 나타내 광명을 놓네.

 

이렇게 이 세상은 부처로 가득 찼다.

왜 이들이 다 부처냐? 본래 부처이기 때문이다. 일월이란 아무리 구름이 가린다 해도 일월이 아닐 수 없듯이 비록 그대들이 외면하고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부처 아닌 자가 없도다.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은 일체중생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런가? 모두 다 천진본불(天眞本佛)인데 어떻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아름답고 추하고, 잘살고 못사는 것으로 분별하지 말고 그 본성을 바로 보면 두두물물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 보이고, 중생의 눈으로 보면 중생만 보인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왕사를 지낸 무학 자초(無學自超)화상이 있었다. 이성계는 아들 방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함흥지방에 가서 칩거하고 있었는데 한양에서 차사가 오면 모조리 죽여서 분을 삭였다. 함흥차사(咸興差使)란 그래서 생긴 말이다.

그런 이성계에게 어느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무학대사가 위로를 하러 들렀다. 이런저런 지난 얘기를 하던 이성계가 마음이 풀렸는지 무학대사와 농담을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대사의 얼굴은 꼭 돼지처럼 생겼구료.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태상왕의 용안은 부처님처럼 생겼습니다.

“아니 대사. 우리 서로 농담을 하자고 해서 내가 좀 심한 말을 했는데 대사는 어찌 나를 부처님 같다고 하오?

이에 무학대사가 다시 한 마디 했다.

“예. 돼지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돼지로 보이지만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 부처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두 사람의 농담은 여기서 끝났거니와 지금 여러 대중들의 경계는 어떠한가.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이는가 돼지로 보이는가?

 

坐斷千山與萬山

勸人除却是非難

他時好惡知端的

始覺從前滿面灰

천산만산을 앉은 채 모두 끊을 수 있지만

사람에게 시비를 없애라고 권하는 건 더욱 어렵네.

뒷날 좋고 나쁜 것을 똑바로 알게 되면

이제껏 얼굴이 재로 뒤덮여 있었음을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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