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성림당 월산 대종사



日月은 東西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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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2 작성일18-06-04 11:03 조회4,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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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月은 東西에 걸리지 않는다

 

노사께서 법상에 올라 대중에게 물으셨다.

 

불법문중(佛法門中)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부처의 경계에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했다. 왜 그런가? 예를 들어 법당을 하나 짓는다고 하자. 법당에는 기둥도 필요하고 대들보도 필요하고 석가래와 기와도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먼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조사관문(祖師關門)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라, 조사의 관문을 투철하고자 하면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일체의 경계는 환화요 번뇌이니 이를 버리지 않고서는 조사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도 취할 것이 없다.

하나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러면 이 경계에 이르러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버리지 않아야 하는가?

오늘은 이 한 마디를 묻겠다.

이르라!

대중이 말이 없자 노사가 자대하셨다.

 

天高地厚며 兎走鳥飛로다.

하늘은 높고 대지는 두터우며, 토끼는 뛰고 새는 날도다.

 

부처님을 시해하려는 죄를 지은 데바달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부처님이 불쌍하게 여겨 아난존자를 보내 위로하였다.

“그대는 지옥에서 견딜만 한가?

“나는 지옥에 있어도 즐겁다.

아난이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니 다시 가 이렇게 묻도록 했다.

“그대는 지옥에서 언제 나오겠는가?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 때 내가 나갈 것이다.

“세존은 삼계의 큰 스승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올 이치가 있겠는가?

이에 데바달다는 이렇게 대답하고 화탕 속으로 들어갔다.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 이치가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서 나갈 이치가 있겠느냐?

 

대중들은 이 법문을 알아 듣겠는가? 극락과 지옥은 다 정토이니 법계의 성품이란 결국 마음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무엇을 부처라 하고, 무엇을 지옥이라 하겠는가?

옛날 우리나라의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사굴산문( 堀山門)을 개창한 범일 통효(梵日通曉)국사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염관 제안(鹽官齊安)화상을 참문할 때의 일이다. 화상은 국사를 보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국(東國)에서 왔습니다.

“육로(陸路)로 왔는가 수로(水路)로 왔는가”

“두 길을 모두 거치지 않고 왔습니다.

“두 길을 모두 거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로 왔는가?

“일월(日月)이 다니는데 동서(東西)가 무슨 장애가 되겠습니까?

이 말에 염관화상은 인가를 했다.

“과연 동방의 보살이로다.

 

실로 그러하다. 좌우에 머물지 않고 시비선악을 벗어나며 그 마음이 한가로우면 극락과 지옥이 모두 쓸데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르면 불사일법(不捨一法)과 불수일진(不受一塵)이 손바닥이요 손등임을 알게 되리라.

 

透出乾坤通天地니라

건곤을 뚫고 벗어나야 천지에 통하느니라.

 

노사께서 주장자를 두 번 치고 하좌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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